초월명상이란?초월 = 인간의 절정 경험

관리자
20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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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것이며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이 웹사이트에는 초월 경험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심오한 변화에 대한 풍부한 예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간단한 이완법이 삶의 전 영역에서 그렇게 심대한 효과를 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다른 명상이나 이완법들은 그 같은 효과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초월명상에는 단순한 이완보다 훨씬 심오한 무엇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 페이지에서 우리는 초월이 진정 무엇인지 탐색한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 의식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해 많은 이론들이 있다. 이제 그 이론들 중 가장 오랜 이론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 것 같다. 고대 베다 문헌들에서 의식(意識 , Consciousness)은 한 장()이며 모든 것의 본질을 관통하고 모든 것을 나머지 모든 것과 연결하고 있으며, 한편 인간의 몸을 통해 개인의식을 표출하는 길을 얻게 된 무엇이다. 우리는 생각의 근원에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 및 사물과 밀접히 연결되고 우리가 초월할 때 이런 연결을 직접 경험한다.

아래 이론은 여러분이 초월명상 효과를 보기 위해 동의할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초월명상은 어떤 신념이나 지적 이해가 필요하지 않는 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기법이다. 초월명상을 시행하는 데는 이 이론이 필요하지 않지만, 왜 초월이 그리고 오로지 초월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놀랄만한 효과를 낳는지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


무엇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오늘날 대부분 과학자들은 의식이 뇌 속의 온갖 전기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세스 칩 속에 수백만 개 스위치가 소프트웨어라는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가동되는 것처럼 뇌 속에도 수백만 개 전기 화학적 과정이 있고 모두 함께 가동되어 의식이라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 마디로 매우 복잡한 로봇일 뿐이다.

컴퓨터에 비유는 우리의 경험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논리적으로 들린다. 우리 모두 컴퓨터를 절전 모드에 놓으면 소프트웨어가 가동을 멈출 것을 안다(수면). 만약 컴퓨터의 일부 하드웨어 부품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그것은 소프트웨어의 품질에 명백한 영향을 준다(뇌 손상). 그리고 하드웨어가 부서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사망).

의학이 최근 몇 년 동안 뇌의 특정 기능이 어떻게 특정 경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지점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은 이런 관점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다른 가능성은 더 있는 것 같지 않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창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단지 걸어 다니는 기계가 아니라고 알고 또 느낀다. 로봇은 온기와 창의성, 감정 그리고 사랑이 없다. 인간을 기계와 구별 짓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들이다.


수천년 간 우리는 이성이 말하는 것과 감정이 말하는 것 사이에 갈등을 느껴왔지만 대답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우리의 이성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말하면 우리의 감정은 다른 것을 말한다. 이런 갈등이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 시대 이래로 수천 년 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해답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으며 우리는 단지 관점을 약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연결되어 있듯이 이성과 감정은 우리의 신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순수한 기계적 존재 이상이다. 신경계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가 아니라 라디오 비유를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누군가 라디오가 어떻게 가동되는지 알지 못 한다고 해보자. 라디오를 끄면 음악 연주가 멈춘다. 라디오의 하드웨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면 음악의 질에 분명한 영향을 줄 것이고, 하드웨어를 완전히 망가트리면 더 이상 음악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라디오가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물론 우리는 어리석지 않다. 라디오는 라디오 그 자체의 물리적 크기보다 훨씬 큰 장() 위에 나타나는 진동을 국소적으로 표현하는 복잡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장()이 다른 주파수로 진동함으로써 다른 음악(97.5 FM: 클래식, 101.3 FM: 락, 105.6 FM: 댄스 등)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의 의식을 바다의 파도에 비유할 수 있다. 동시에 서로 다른 파도를 유발하는 바다가 있다. 각 파도는 독특하고 다른 파도와 다르지만 여전히 같은 바다의 일부이다. 각 인간 신체는 특정한 고유 주파수에 맞춰져서 각자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생각을 갖는 라디오와 다소 닮은 면이 있다.

우리는 이런 비유가 현대 의학의 모든 발견과 상충되지 않음을 안다. 음악이 라디오의 기능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뇌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본질에 대한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왜 그것을 경험할 수 없을까?
실제로 우리는 경험한다. 우리 모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본질적으로 이 가설은 우리가 우리 마음의 근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적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정말 연결되어 있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 할까?’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우리 모두 느낀다. 자연재해가 닥친 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부해 달라는 부탁을 들을 때면 많은 사람들은 돕고 싶어 한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할까? 로봇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심이 있다.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이란 다른 인간 존재와 연결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사랑은 정확히 우리가 그런 연결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정신 잠재력 중 매우 한정된 부분만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런 사랑을 경험하는 것(그리고 삶의 모든 다른 면)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데 있다. 현대 심리학이 ‘의식하는 마음’이라고 묘사하는 부분은 파도의 최고 꼭대기 부분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나머지는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 그 토대인 잠재의식의 가장 깊숙한 부분,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는 수준, 혹은 칼 융이 ‘그룹 무의식’이라 묘사한 곳에서 파도는 바다와 하나가 된다.

왜 우리는 정신적 잠재력의 일부만을 사용할까? 
잠재력을 더 쓰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훈련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우리들


하지만 왜 우리는 이런 마음의 더 깊은 수준들을 경험할 수 없을까? 우리가 이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어떻게 마음과 두뇌를 훈련해야하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근육처럼 가동된다. 우리가 단련하면 성장하고 단련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우리의 주의가 외부로 향해 있을 때, 즉 주의가 특정 대상에 초점이 맞춰졌을 때 우리는 국소적인 파장만을 활성화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곳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부분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개발하는 유일한 영역이 될 것이다. 나머지 부분은 미개발 상태로 있다.

초월명상 시행 중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음은 자연스럽게 더욱 미세한 생각 수준을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마치 파도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생각의 가장 미세한 단계를 초월하고(넘어서고) 순수한 존재 상태로 들어간다. 파도는 완전히 바다와 하나가 되고 우리는 바다 그 자체, 즉 우리의 진정하고 무한한 본질을 의식적으로 경험한다. 파도는 나중에 돌아 나오지만 우리의 진정한 본질의 특성들은 어느 정도 우리의 마음에 남게 될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기억은 남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잠재력을 완전히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런 비유를 통해 우리는 또 다른 관점에서 왜 초월이 전혀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한지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디딘다. 대부분 집중법에서 하는 노력은 실제로는 마음을 바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마음이 분주하다면 그 파도는 개별적인 파도 형태로 남게 될 것이다. 오로지 전적으로 조용한 파도만이 바다와 하나가 될 것이다. 초월명상이 완전히 자연스럽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효율성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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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많이 초월할수록 그 기억은 더 강하게 남게 되고 우리의 진정한 본질이 일상 활동 속에서도 더 많이 자각된다.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초월명상을 통해 느끼는 모든 경이로운 개선은 바로 이런 과정의 결과이다. 이것이 일반 이완과 진정한 초월의 차이다.

1. 신체가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가.
2.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가.


대양(大洋)의 특성: 합일

우리는 이런 의식의 장()이자 생명의 근원인 대양의 특성을 여러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동일한 특성인 합일(合一, Unity)로 귀결된다.

요즘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865px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뉴에이지 문학이 아주 인기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날 합일이 훨씬 더 과학적인 현실이 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 한다. 물리학의 최신 발견에서는 전적으로 물질적 우주의 기원에 존재하는 우주 의식의 장()이 실재함을 보여준다. 

이런 합일의 특성을 개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왜 초월명상이 그렇게 놀라운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적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합일 = 생명: 창의력, 지성, 자아의식

물리학의 최신 발견을 통해 밝혀진 우주 이미지를 근거로 해서 보는 생명이란, 생명 없는 물질 세계였을 수도 있는 곳을 우연히 여기 저기 걸어 다니게 된 무엇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은 생명이 보편적인 것이며, 의식의 보편적인 장()임을 보여준다. 지성, 창의력, 그리고 의식인 생명은 대자연의 모든 곳에 있고, 인간의 본질은 대자연의 일부이다.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신체가 라디오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이 장()에 개인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컴퓨터 비유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작은 공이나 컴퓨터칩 속의 원자 같은 생명 없는 물질의 집합은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하더라도 절대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 한다. 하지만 지성과 창의력을 지닌 생명은 물질적인 것들을 완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예로 조각상이라도 보기 바란다.

우리는 초월을 통해 다시 생명의 근원을 만난다. 초월명상 시행자는 더 활기를 느끼고, 더 건강해지고, 자기 인식이 더 자라나며(초월 = 진정한 자신 되기 참조), 더 지적이고 창의적으로 된다.


합일 = 순수한 긍정성: 성장, 진화, 행복, 평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상반되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 모든 것이 다른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뜻함-차가움, 밝음-어두움, 사랑-증오, 긍정-부정, 위-아래처럼 말이다. 합일의 수준에서는 이런 모순이 사라지고 단지 한 특성만이 남는데, 고대 경전들은 그것을 순수한 긍정성이라고 묘사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항상 더 나은 상태를 향해 성장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 속에서 이런 특성을 관찰할 수 있다. 행복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 속에서 이런 특성을 인식할 수 있다. 행복은 우리의 진정한 (긍정적인)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합일은 평화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모순이 사라질 때 갈등도 사라지고 오로지 평화만 남는다.

초월명상 시행자가 보통 처음 경험하는 것은 더 깊은 내면의 평화와 행복이다(이것은 초월명상 시행 중 뇌 속의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증가량을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점점 더 우리의 성격 속에 깊이 스며듦에 따라 이런 내면의 평화와 행복 상태는 명상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어둠과 싸우지 말라, 그냥 불을 켜라” ─ 마하리쉬

우리 의식 속의 긍정성을 일깨우면 부정성이 사라질 것이다. 불이 켜질 때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듯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증 그리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정말 간단한 일이다.


합일은 연결되어 있다: 사랑

사랑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표면 수준에서 이런 연결을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나, 배우자, 가족, 친구들에서 어느 정도 느낀다. 우리 마음의 근원인 대양에서는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가끔 우리는 그것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재해를 입은 세계 반대편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실제로 돈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한 번 만난 적도 없고, 이 사람들과 어떤 물리적 연결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연결을 느끼고 돕고 싶어 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이런 실재를 경험하는 초월명상 시행자들은 이런 특성이 자라남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 더 사랑하게 되고 타인을 더 잘 대하기 시작하며 자연과 더 강한 연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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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 전지(全知)

우리의 일상 수준에서는, 주변 일에 대해 감각을 통한 관찰이나 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한정된 지식만을 갖는다. 대양의 수준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모든 것에 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실재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의식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잠재의식이 알고 있다고 느낀다. 가끔 그런 수준으로부터 일어난 충동이 우리의 의식하는 마음에 도달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적으로 아는 것보다 더 잘 안다는 느낌, 즉 직관으로서 인식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스포츠나 피아노 치기 재능이 더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직관적인 일에 더 많은 재능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을 개발했을 뿐이다.

초월명상 시행자들은 자신의 직관력이 향상됨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마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계산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라도 소유한 듯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며, 전적으로 긍정적인 그 본성에 따라 자신과 자신의 환경에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생각을 한다.

자발적으로 적절한 생각을 해내는 좋은 예가 미국의 마하리쉬 학교에서 볼 수 있다. 아이오와의 조그마한 학교인 그곳의 학생들은 초, 중, 고등학교 내내 초월명상을 시행한다. 이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어린이들이 매년 10만 명씩 참가하는) 창의력 올림피아드의 창의적 문제해결 경연에서 이미 네 차례 우승했다. 세계의 어떤 학교도 그런 기록을 세운 적이 없었다. 그들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창의적 해법을 가장 잘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탁월한 성취 덕에 점점 많은 정부가 교육에서 초월명상을 지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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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 무한한 구성력
대양의 수준에서는 모든 것이 대양 속에서 창조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전능(全能) 또는 무한한 구성력에 대해 말해 보겠다. 사람은 자신의 손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식 수준에서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요즘 뉴에이지 문학에서 적극적인 사고, 시각화, 긍정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한다. 우리가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환경이 더 효율적, 긍정적, 우호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이론의 요지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정말로 어떤 효과를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우리가 결과를 얻으려고 의식하는 마음의 가장 피상적인 부분에서 애쓰기 때문이다.

이것은 멀리서 호수로 돌을 던져 넣는 것과 비슷하다. 거리가 멀기에 작은 돌만을 던질 수 있고, 여러분이 만들 수 있는 효과는 별로 크지 않아서 거의 알아차리지 못 할 정도이다. 초월명상을 시작함으로써 우리는 정신적 잠재력의 더 큰 부분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그것은 우리가 호수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더 큰 돌을 던질 수 있고, 더 큰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초월명상 시행자들은 자발적으로 적절한 생각을 해낼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의 결과에 성공적으로 이르는 데 필요한 주변의 지원을 더 많이 받게 됨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신의 의지’가 그런 생각을 돕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라는 생각이 실현되게 모든 것이 조직된다. 이것이 초월명상 시행자들이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더 성공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서 시행된 연구들에서는 매우 성공한 사람들과 일반 사람들의 차이는 뇌가 한 전체로서 얼마나 일관되게 기능하는지(초월의식이 얼마나 일상생활에 통합되어 있는지)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관리자와 최고 관리자, 평범한 운동선수와 세계적인 운동선수의 차이는 뇌에 달렸다. (뇌 잠재력 개발하기 참조)


합일, 뇌에서 측정 가능

이 모든 개념들이 매우 추상적으로 들려서 실제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것으로 들릴 수 있지만, 현대 기술을 이용해 그 실제 효과를 즉시 눈으로 볼 수 있다. EEG 통일성 측정을 통해 우리의 뇌가 얼마나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더 많이 한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EEG 통일성은 ADHD 감소, 충동성 감소, 신경증 감소, 정서 불안정 감소, 도덕적 행동 증가(더 많은 사랑), 지능 증가 및 창의력 증진과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또한 학습능력과 반사운동속도 증가, 학업 성적 향상 등과도 관련이 있었다. 뇌가 한 통합된 전체로서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할 때 인간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이 향상되는 것 같다. 그리고 초월은 지금까지 연구된 이런 통합적인 기능 향상법들 중에 가장 강력하다.



합일 = 천하무적
초월은 우리가 생명의 근원과 접하게 해주기 때문에 삶의 모든 영역의 모든 것에 동시에 효력을 미친다. 이것은 초월명상에 대한 600회 이상 연구와 350개 이상 출판물을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이 모든 개선은 우리 의식 속에서 자라나는 완전히 새로운 상태, 마하리쉬가 ‘상승(常勝 Invincibility) 또는 무적(無敵)’이라고 묘사한 상태가 가져오는 부수적인 혜택일 뿐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 내면의 평화와 행복은 천하무적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것을 침범하지 못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자기인식을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자신을 유지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의 창의적 잠재력은 천하무적이다. 우리가 해답을 찾지 못할 문제란 없다. (마하리쉬 학교 학생들과 약간 비슷하다. 그들이 아직 모든 세계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진 못 했기 때문에 완전히 천하무적은 아니지만, 세계의 어떤 학교보다도 천하무적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천하무적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마하리쉬가 애초에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는 이런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타고난 권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삶이다. 다만 그 근원을 만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내 방법을 명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탐구 기술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 다이빙하게 하며, 그 속에 생명의 정수, 모든 지혜, 모든 창의력, 모든 평화, 모든 행복의 근원이 있습니다… 명상이라는 말은 새롭지 않지만 명상이 주는 혜택은 새롭습니다… 하지만 수 세기 동안 이런 기술은 상실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고통을 겪는, 혹은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